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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리뷰 현실보다 더 소름돋는 일상공포

by 부캐러 2025. 4. 15.

비 오는 날 지하철에서 갑자기 말을 거는 낯선 사람, 배달기사가 현관문 앞에서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의 불안감. 그 모든 일들이 너무 ‘일상적’이라 무서운 영화가 있습니다. 정범식 감독의 신작 《뉴노멀》은 단순한 공포영화를 넘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상한 평범함’을 직시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누구나 겪을 법한 여섯 개의 에피소드 속엔 기묘한 연결과 서늘한 현실이 녹아 있습니다.

영화 소개

뉴노멀
영화 뉴노멀(출처 구글이미지검색)

영화 뉴노멀은 여섯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 스릴러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여름눈이 내리는 이례적인 날씨 속에서, 서로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여섯 인물이 각자의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그 속에 감춰진 섬뜩한 위협과 마주하게 됩니다. 정범식 감독은 《기담》, 《곤지암》으로 한국 공포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던 연출자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현실에 발 딛은 공포를 정교하게 끌어냅니다. “뉴스에서 봤던 사건들이 진짜 내 일이 된다면?”이라는 공포, 그리고 그 안에서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찔러냅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공포’라는 컨셉에 충실하되, 블랙코미디, 로맨스, 서스펜스 등 장르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몰입도를 높였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앤솔로지 시리즈처럼 각자의 이야기가 독립적으로 진행되면서도, 묘하게 얽혀들며 퍼즐을 완성해 갑니다. 단순한 귀신이나 괴물 대신,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제일 무서운' 상황들이 등장합니다. 영화 속 설정은 현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소름 끼칩니다.

 

주요 에피소드 소개 

뉴노멀
영화 뉴노멀(출처 구글이미지검색)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갑자기 점검을 명목으로 들어온 남성, CCTV도 없는 사각지대, 그리고 의심스러운 말과 행동들. 영화의 첫 에피소드는 현실 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설정으로 시작됩니다. 이어 등장하는 편의점 알바생 연진은 매일같이 진상을 상대하며 무뎌졌지만, 점점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 쌓여갑니다. 불쑥 솟아나는 충동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적어내는 자극적인 말들. 그녀의 내면에 축적된 분노는 결국 폭발 직전까지 몰고 갑니다. 현수는 매칭 앱으로 이상형을 찾으려 하지만, 데이트 상대는 알고 보니 ‘두 개의 폰’을 활용한 바람둥이. 욕설과 모욕, 신체 접촉이 난무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모멸감과 두려움을 함께 겪습니다. 또 다른 인물 승진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도우려다, 낯선 상가 지하로 끌려가며 ‘좋은 일 하려다 큰일 나는’ 공포의 정석을 겪습니다. 훈은 자판기에서 시작된 ‘운명을 설계하는 편지’에 이끌려 미지의 존재와 연결됩니다. 처음에는 장난 같지만, 점차 정교한 미션처럼 이어지는 쪽지들과 봉투. 그는 과연 진짜 인연을 만난 걸까요, 아니면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걸까요? 마지막으로 흑화 직전의 연지는 평범한 날에 마주친 ‘여자 진상’과 마찰을 빚고, 그날 밤 치명적인 선택을 마주합니다. 분노에 휘말린 채 현실을 잃어가는 모습은 꽤나 섬뜩합니다.

이 여섯 개의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지만, 교차 편집과 단서들을 통해 끝내 ‘연결되어 있었음’을 암시하며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그 연결 고리가 바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뉴노멀’한 시대라는 점이 가장 무섭습니다.

감상평 및 추천 포인트

뉴노멀
영화 뉴노멀(출처 구글이미지검색)

《뉴노멀》은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섬뜩하게 현실적인 영화입니다. SNS에서 본 적 있는 사건들, 뉴스로 접했던 범죄들, 우리가 지나쳤던 위기 상황들이 영화 속에 그대로 담겨 있죠. 공포라는 장르를 빌려왔지만, 사실상 이 영화는 현대인의 고립, 분노, 불신, 그리고 단절된 인간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불편한 감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일상 속에 녹아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소름’은 굉장히 실질적입니다. 또한 각 인물의 서사를 연결하는 구성과 챕터 제목들이 클래식 영화 패러디라는 점도 재미 요소 중 하나입니다. 영화 좀 본다 싶은 관객이라면 깨알같은 오마주에 미소 지을 장면도 많죠. 정범식 감독 특유의 분위기 장악력도 돋보입니다. 무섭다 싶으면 갑자기 웃기고, 웃기다 싶으면 섬뜩해지는 전환이 무척 매끄럽습니다. 장르 간의 경계를 지우면서도, 모든 이야기를 ‘일상의 위기’라는 공통된 주제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디렉팅의 완성도는 꽤 높습니다. 결국 《뉴노멀》은 공포영화라기보단 ‘현실을 마주하게 만드는 영화’입니다. 겁주려는 의도보다, 이 시대의 이상한 평범함에 대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이면 더 깊이 와닿을 겁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혼자 보면 더 무섭고, 같이 보면 더 씁쓸합니다. 누구와 보든, 보고 나면 평소 마주치던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