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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왕이 된 남자 리뷰 - 진짜 임금보다 더 임금 같았던 남자, 하선의 이야기

by 부캐러 2025. 3. 31.

진짜 오랜만에 다시 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볼 때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영화다. 단순한 대역극이 아니라, 권력 앞에서 사람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진중하고도 따뜻한 사극. 조선시대 배경이지만, 지금 시대에도 울림이 있다. 무엇보다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본질과 책임에 대해 묻는 영화라는 점에서, 한 번 보고 마는 영화가 아닌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줄거리 요약, 하지만 중심은 감정이다

왕의남자
영화 왕의남자(출처 구글이미지검색)

이야기는 독살 위협을 느낀 광해군이 자신의 대역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그래서 궁궐로 들어온 천민 출신 광대 하선. 처음엔 우왕좌왕하지만, 점점 진짜 임금보다도 더 백성을 생각하는 왕이 되어간다. 중간중간 코믹한 장면도 많고, 하선의 순수함과 정직함이 묻어나면서 관객에게 따뜻한 인상을 준다. 궁궐의 권모술수와 암투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하선이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사람’을 중심에 둔 정치를 펼쳐간다. 영화의 힘은 그 변화에 있다. 하선이 서서히 왕의 권위를 이해하고, 그 책임감을 자기 안에서 길어 올리는 모습은 단순한 감정이입 이상의 감동을 준다. 또한, 하선이 중전과 교감을 나누는 장면들은 사극 특유의 정적이고 절제된 감정 표현 속에서도 깊은 여운을 남긴다. 중전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가 하선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면 감정선의 촘촘한 설계가 돋보인다. 하선이 단순히 자리를 대신하는 인물이 아닌, 시대의 아픔과 백성의 고통을 몸으로 체화하며 진정한 왕으로 깨어나는 여정은 관객에게 오래 남는 감정을 선사한다.

 

이병헌의 연기력, 두 인물의 간극을 넘나들다

왕의남자
영화 왕의남자(출처 구글이미지검색)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단연 이병헌의 연기다. 냉철하고 날카로운 광해군과, 순박하고 따뜻한 하선을 완전히 다르게 연기한다. 같은 얼굴인데도 말투, 눈빛, 자세 하나로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특히 하선이 왕의 역할에 익숙해지며 점점 생각과 말이 깊어지는 모습은 감정적으로 큰 여운을 준다. 처음엔 두려워하던 그가, 나중에는 백성을 위해 용기 있게 맞서는 장면은 정말 눈물 나게 멋있다. 감정의 결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이병헌의 연기는 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힘이다. 코믹과 진중함을 오가는 균형감도 압도적이다. 하선이 중전을 향해 보여주는 은근한 로맨스, 도부장을 향한 인간적인 신뢰, 허균과의 정치적 대화까지 모두가 하나의 사람 안에서 표현된다. 이병헌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의 무게감은 절대 같지 않았을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극의 감정을 확장시키고, 메시지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이야기 구조는 익숙하지만 감정선은 신선

왕의남자
영화 왕의남자(출처 구글이미지검색)

‘대역 임금’이라는 설정은 사실 그리 새롭지 않지만, '광해'는 그 설정을 활용해 인물의 내면을 깊게 파고든다. 하선이 점점 백성의 고통에 눈뜨고, 나랏일에 대해 배우고 고민하면서 진짜 임금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무척 섬세하게 그려진다. 하선과 중전, 하선과 도부장, 하선과 허균 사이의 관계 역시 드라마틱하면서도 인간적이다. 그 안에서 인물들이 끊임없이 갈등하고 성장하는 모습은 단순한 권력 이야기를 넘어서 사람 이야기로 확장된다. 특히 중전과의 감정선은 잔잔하지만 묵직하고, 허균과의 신뢰 관계도 영화의 서사를 풍부하게 만든다. 결국 하선이 왕이 되기까지, 그를 변화시킨 건 주변 인물들과의 끊임없는 충돌과 대화였다. 또한, 후반부로 갈수록 하선이 보여주는 통치철학은 단순한 이상주의를 넘어선다. 백성을 위한 정치란 무엇인가, 임금의 자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심 어린 고민이 드러난다. 중전에게 건넨 팥죽 한 그릇에도, 하선의 따뜻한 배려와 책임감이 묻어난다. 그 진심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힘이 된다.

 

현대에도 통하는 메시지, 그래서 더 와닿는다

왕의남자
영화 왕의남자(출처 구글이미지검색)

무엇보다 '광해'가 인상적인 이유는, 지금 시대에도 통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다. 정치란 결국 백성을 위한 것이고, 권력이란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아주 단순하지만 중요한 진리를 다시 상기시켜 준다. 하선이 무게를 견디며 끝까지 버티는 장면은 요즘 리더들에게도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졌다. "과연 당신은 그 자리에 어울리는가?"라는 묵직한 물음. 또한 하선이 보여주는 통치 방식은 이상적이면서도 현실적인 면을 동시에 품고 있어 이상과 현실 사이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한 개인의 변화가 공동체에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는지를 되새기게 되는 지점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권력과 정의, 진심과 위선 사이에서 끝없이 고민하는 인물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단순히 ‘좋은 임금’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자리에 서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했는지, 그 선택이 남긴 책임과 대가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하선이 떠나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아쉬움과 여운은 그저 한 인물의 퇴장이 아니라, 시대의 한 장이 끝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