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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카드 리뷰: 진짜 형사들이 그려낸 서울의 밤

by 부캐러 2025. 3. 31.

영화라는 게 꼭 화려하고 멋져야만 좋은 건 아니잖아요. 《와일드카드》는 진짜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정서가 있는 영화예요. 번쩍이는 액션 대신 덤덤하게, 그러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감정들. 영화를 보고 나면 ‘아, 형사들도 우리 같은 사람이구나’ 싶어요. 서울 어딘가에서 아직도 저런 사람들이 밤을 지키고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서울 골목을 누비는 투박하지만 진짜 형사들

와일드카드
영화 와일드카드(출처 구글이미지검색)

처음엔 그저 2000년대 형사물이라 해서 큰 기대 없이 봤어요. 그런데 한 장면 한 장면이 참 묘하게 마음에 남는 영화더라고요. 주인공 지수(양동근)와 영달(정진영)의 조합은 보기 드문 ‘진짜’ 콤비였습니다. 둘이 맨날 투닥거리지만 묘하게 정 들게 하는 케미랄까요. 영달은 잔소리 많고 지치는 스타일인데, 지수는 요즘 스타일답게 말도 많고 감정 표현도 솔직하죠. 딱 지금 MZ와 X세대가 한 팀 되는 느낌이에요.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어요. 밤샘 근무 중 둘이 컵라면 하나로 끼니 때우면서, 사소한 얘기 나누는 장면. 그게 진짜 경찰 같고,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아무리 법이고 정의고 해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라는 걸 이렇게 보여주네요. 그리고 그 일상이 너무 소소하고, 동시에 너무 고된 거라 더 와닿아요. 우리가 자주 지나치는 어두운 골목 어딘가, 그렇게 묵묵히 순찰을 도는 형사들이 진짜 있다는 걸 새삼 느끼게 해줘요.

 

범인을 쫓는 이야기, 그 너머의 이야기

와일드카드
영화 와일드카드(출처 구글이미지검색)

이 영화는 범인을 추격하는 걸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아요. 오히려 그 과정에서 형사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 그리고 피해자와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더 집중하죠. 사건 자체는 단순 강력사건이에요. 하지만 피해자 가족, 특히 어린 남매를 남긴 여자의 죽음은 영화 전체를 감정적으로 무겁게 만들어요. 그걸 전하는 형사의 눈빛 하나에도 슬픔이 담겨 있고요.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지수가 총을 꺼내는 장면. 예전에 범인을 쏘아 죽였던 트라우마 때문에 쉽게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데, 그 감정선이 너무 현실적이었어요. 경찰도 사람이라는 걸 이렇게 절절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또 있을까요? 그 장면 이후 지수가 뭔가를 삼키듯, 감정을 꾹꾹 눌러 담는 모습이 오래 남았어요. 영화는 단지 정의의 칼날이 아니라, 그 칼날을 쥔 사람의 무게도 함께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더 특별했던 건, 피해자의 고통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배경도 아주 조심스럽게 그려낸다는 점이에요. 물론 가해를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사회 속 작은 균열이 한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시선이 느껴졌어요. 단순히 '나쁜 놈을 잡았다'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이 생기는가’에 대한 고민이 묻어나는 영화였어요.

 

모난 구석도 있지만,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 영화

와일드카드
영화 와일드카드(출처 구글이미지검색)

물론 이 영화가 완벽하다고는 말 못하겠어요. 지금 시점에서 보면 연출이나 편집이 좀 거칠고, 몇몇 장면은 너무 뻔한 구성도 있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진짜 같았어요. 요즘 영화처럼 과하게 꾸미지 않았고, 캐릭터들도 너무 미화되지 않았거든요. 그냥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느낌. 형사들이 범인을 잡으려고 뛰는 모습도 멋있다기보단 ‘힘들겠다’ 싶은 마음이 먼저 들어요. 하지만 그 힘듦을 참고 계속해 나가는 게 진짜 멋이죠. 와일드카드는 그런 ‘찐 형사’들의 이야기를, 가볍지 않게, 또 무겁게만도 하지 않게 잘 풀어낸 영화였어요. 그리고 이 영화가 놓치지 않은 건, 유머와 인간미였어요. 형사들끼리 주고받는 농담, 별것도 아닌 일에 욱하면서도 금세 화해하는 모습들. 현실 속 우리가 매일 겪는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이런 디테일들이 이 영화를 더 정겹고 가까운 이야기로 느껴지게 합니다.

 

아직도 마음에 남는 한마디

“뛰어봤자야. 우리나라엔 삼면이 바다고, 육군 60만이 있어.” 이 대사, 얼핏 들으면 우스운 농담 같죠? 근데 그 안에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있어요. 범인이 아무리 달아나도, 경찰은 끝까지 따라간다는 의지. 웃기면서도 울컥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어요. 결국 이 영화는 범죄를 해결하는 이야기이기보다, 책임을 지고 달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우리가 쉽게 비난하거나 쉽게 응원하는 그들 삶의 무게를 아주 솔직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