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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리뷰: 여우와 오니,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던 땅의 이야기

by 부캐러 2025. 4. 5.

2024년, 한국 오컬트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 장재현 감독의 <파묘>는 단순한 공포를 넘어선 복합장르의 매력을 지닌 영화다. <검은 사제들>, <사바하>를 잇는 세 번째 작품이자 무속신앙과 민속 설화, 일본 요괴설까지 녹여낸 이 영화는, 진짜 '웰메이드'란 단어가 어울린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정말 흥미롭게 봤다. 단순히 무서운 장면이나 자극적인 설정이 아니라, '처음 알게 된' 낯선 세계관이 너무 새로웠기 때문이다.

 

▍소개: 악지를 파헤치는 사람들

파묘
영화 파묘(출처 구글이미지검색)

미국에 정착한 재벌 집안, 자손들이 하나둘씩 죽거나 이상 행동을 보이자 한국의 유명한 무당 림(김고은)과 풍수사 김상덕(최민식)이 불려 온다. 문제의 장소는 조상 묘지. 이곳은 풍수적으로 사람이 묻혀서는 안 될 악지이자, 뭔가가 "나온" 자리다. 묘를 파헤치자 관 아래 또 다른 관이 등장하고, 일본 요괴를 떠올리게 하는 기괴한 존재까지 드러난다. 이 영화의 제목 <파묘>는 단순히 무덤을 파는 행위를 넘어서, 우리가 억지로 덮어왔던 역사, 숨겨진 죄, 그리고 한반도에 남겨진 악령을 파헤친다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줄거리: 여우와 오니, 악한 기운의 정체

파묘
영화 파묘(출처 구글이미지검색)

김상덕은 묘지를 보는 순간 단박에 알아차린다. 이건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곳. 북쪽으로 열린 귀문, 볕이 들지 않는 음지, 그리고 묘지 근처에 나타난 무리의 여우들. 여우는 예로부터 음기의 상징이자 사람을 홀리는 존재로, 풍수적으로 흉한 기운의 지표다. 게다가 관 밑에 숨어 있던 건, 단순한 시신이 아니었다. 박지영의 할아버지 박근현은 친일파로, 일본 식민시절 악행을 일삼은 인물이다. 그의 묘 아래엔 또 다른 관, 그리고 일본의 도깨비 요괴 오니가 봉인돼 있었던 것. 이 오니는 단순한 요괴가 아니라, 실제 일본사와 연결된 무라야마 준지라는 인물과 관련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반도의 기운을 끊기 위해 쇠말뚝 의식을 행한 인물. 영화는 그 쇠말뚝이 사실은 요괴의 신체였고, 이를 봉인한 것이 박근현의 묘지였다는 설정을 통해, 식민의 잔재가 지금도 땅에 남아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느낀 점: 무속과 역사, 공포 그 너머

파묘
영화 파묘(출처 구글이미지검색)

<파묘>는 무속신앙을 소비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김고은이 연기한 림은 그저 구슬 외치는 무당이 아니라, 악과 대적하는 현대판 사제에 가깝다. 무속과 음양오행, 일본 요괴 설화를 정교하게 엮어내며 장르적 재미를 주되, 땅에 새겨진 기억과 죄에 대한 사유를 강요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바로 그 지점이다. 단순히 무서워서 소름 끼친 게 아니라, 내가 몰랐던 이야기,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진실들이 갑자기 현실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오니와의 대결'은 다소 판타지스럽지만, 전통 오행설을 근간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낸 구성이 인상 깊다. 특히 말의 피, 곡괭이 자루의 물기, 오니의 쇠 신체가 만나며 벌어지는 상생과 상극의 관계는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흡인력 있게 전개된다.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한국적 정서와 상징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다. 여우, 도깨비, 귀문, 무속, 풍수지리 같은 요소들이 단순히 배경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 전반에 걸쳐 유기적으로 녹아들며 극의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서구식 공포와는 다른 결로, 서늘하지만 묘하게 익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한국 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본 느낌이었다.

 

▍총평: 한국형 오컬트의 진화

<파묘>는 단순히 무서운 영화가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역사를 파묻고 살아왔는지를 말없이 고발하는 영화다. 상영관을 나서면서도 머릿속에서 여운이 떠나지 않았다. 친일 청산, 토착 왜구, 우리가 잊고 살았던 이야기들. 그 모든 게 무덤 속에서 꿈틀거리다 깨어난 느낌이랄까. 그리고 동시에, 그 악을 정면으로 마주한 인물들의 용기와 헌신이 깊이 와닿았다. 이건 그냥 한 편의 오컬트물이 아니라,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영적인 감각까지 건드리는 ‘기억의 공포’다. 처음 보는 세계관, 깊이 있는 상징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몰입감. 이 영화가 천만 관객을 향해 간다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작품이 한국 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